close_btn
로그인, 회원가입후 더 많은 혜택을 누리세요 로그인 회원가입 닫기
  • 은열공 강민첨
  • 관리자
    조회 수: 6165, 2009.06.05 08:59:22
  •  DSC_9207.jpg

     

    강민첨(姜民瞻, 963년 11월 29일 ~ 1021년 11월 12일)은 고려의 문신이다. 거란군의 3차 침입 시 상원수 강감찬(姜邯贊)과 함께 부원수가 되어 출전하여 귀주대첩을 이끌었다.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현종 때에는 여진족의 침입을 막았으며, 강감찬 장군의 부장이 되어 8천으로 흥화진에서 소손녕(蕭遜寧)의 10만의 거란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 공으로 지중추 부사·병부상서에 올랐다. 본래 선비 출신으로 무예에는 능하지 못하였으나 의지가 강하여 거듭 전공을 세웠다. 진주 강씨 은열공파조다.

     

    20180504_173942 (1).jpg

     

     

    경남 진주시 강민첨탄생지 (은열사) 전경

     

    경남 진주시 옥봉동에서 의령과 합천으로 넘어가는 말티고개가 있다

    말티고개가 시작되는 옥봉동 삼거리 한편에는 진주 백성들이 건립한 진주 최초의 사당인 은열사가 있다. 고려 현종 때 병부상서를 지낸 은열공 강민첨 장군(963~1021)의 탄생지다. 강민첨 장군은 거란의 60만 대군의 침략 때 강감찬 장군과 함께 승리로 이끈 분이다. 장군은 식읍이었던 하동군 악양, 화개, 적량, 고전면 지역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덜게 해주었다.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탄생지인 곳에 사당을 지어 봄, 가을로 충절과 은혜를 기렸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고려와 조선 시대 공무를 보던 벼슬아치가 묵던 공공여관인 개경원이 있던 터이기도 하다. 왕의 사진이 왕래할 때 경유하는 곳이고 진주 목사가 손님을 영접하며 쉬는 곳이었다. 진주 강씨의 은열사와 진주 하씨의 경류재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의 은열사는 1980년부터 1983년까지 3년 동안 사당과 정문, 재실 등을 새로 지어 정비한 곳이다.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사당 뒤편 바위에는 ‘강은열공유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Profile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림니다.

     

     야무진의 포토에세이

엮인글 0 https://www.jidang.org/zbxe/sajuk_photo/3525/1da/trackback

댓글 0 ...

https://www.jidang.org/zbxe/sajuk_photo/3525
file May.01
file Apr.24
file Apr.03
file Jul.09
file Sep.26
file Jun.05
file Jun.05
file Jun.04
file Jun.04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