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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정제공파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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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제공파 소개

    세거지 : 경남 고성군 거류면 용산리 용산마을

    고구려 병마도원수 원수공 휘 "이식" 시조님으로 부터  중시 박사공 계용(啓庸) 중시조님을 1 세 로 하여

    2 세 급사공 (諱 仁文)      3 세 어사공(諱 師瞻)     4 세 대장군공파 창부(諱 昌富) 선조님으로 
이여져

    15세 휘 후제(諱 後載1648~1688) 네번째 아드님인 16세 용강공 휘 야제(諱 冶? 1661~1713) 선조님으로 부터
 

    용강공파 로  이어집니다

    용강공 야제 할아버지께서 용산 부락에 정착하여 세거지를 이루었고.
 

   후손들이 번성하여 3파의 소종중을 형성하고 있으며


   정제공파는


     박사공 21세 (용강공파 5세손)  정제공 휘 치양(諱 致亮)할아버지를 파조로  용강공파의 지파로
  
     오늘에 이르럿습니다.

    오늘날에는 서울,부산, 마산,충무,등 외지에 대다수 거주하고 있으며 

    고성군 거류면 용산리 세거지에는 십 수 여 세대만이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제공 후손의 모임 부산지회인 지당종목회가 주축이 되어 활성화 되어 있으며


   약 서른 세대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  정제공파 취지문(趣旨文)

   

 

 




3. 진주강씨 용강공파 세거지 용산마을의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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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남 고성군 거류면 용산리 고성군청에서 동쪽 3.5km 거리


리명변천 : 오호촌(烏呼村)→갈촌(葛村)→용산(龍山)으로 마을명칭 변경

고성 들판의 동쪽 가운데 좌측의 거류산과 우측의 벽방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제일 아래쪽에 자리한 마을로 행정 구역은 거류면 용산리 이백여 세대가 한 리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용산마을은 지금부터 약 550여년전 1462년(선조 7년)에 성주배씨(星州裵氏)가 처음 입주하여 오호촌(烏呼村)이란 마을로
 시작하였으며, 그 후 백씨(白氏), 강씨(姜氏), 김씨(金氏)등이 입주하여 마을이 발전하였다고 한다.
1662년(현종(玄宗) 3년)에 마을이름이 갈촌(葛村)으로 개칭되었으며 1850년(철종 2년)에 용산리로 다시 바뀌었다.
단일 마을로서는 호수가 너무 많아 1979년 용산 1구, 용산 2구로 분동되었다가 다시 1995년 12월 1구, 2구를 합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산 2구 마을에 속해있던 조일촌(朝日村)은 일제때에 생겨진 마을 이름으로 마을입구에는 왜정말기에 심었던 벚꽃나무들이
울창하여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였으나 현재에는 벚꽃나무들은 많이 없어졌으며 현대식 건물도 많이 건축되어
옛날의 마을 모습은 많이 변했다.  
용산마을에는 210가구 469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거주민의 성씨는 강씨(姜氏), 구씨(具氏), 김씨(金氏), 노씨(盧氏), 류씨(柳氏),
박씨(朴氏), 백씨(白氏), 서씨(徐氏), 양씨(梁氏), 이씨(李氏), 임씨(林氏), 장씨(張氏), 정씨(鄭氏), 제씨(諸氏), 조씨(趙氏),
차씨(車氏), 천씨(千氏), 최씨(崔氏), 추씨(秋氏), 허씨(許氏), 홍씨(洪氏), 황씨(黃氏), 한씨(韓氏) 등 다양하다.

용산마을 안팎에는 여러 지명들이 있다. 가랑바위,  농바구(바위), 동당골 골짜기, 띠밭등, 마당매미(논), 못뚝(들), 못안(지내)마을,
무지터, 방짓골들, 비암골(백량골), 부치바구(바위), 뻔덕들, 새땀(마을), 새밭등, 생수곡(생식골:냉수가 났다고 함), 점골포강(소류
지:근처에 옹기점이 있었음), 진도가리(논), 진밭(진사래밭), 캥수바구(바위), 코바우등(코바등)등이 그들이다.

- 내용보충 : 고성매일신문 2008/2/20일자 "우리동네이야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