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회 태국 방콕 아시안게임 복싱 밴텀급 금메달 황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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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4308, 2008-08-26 20:56:02(200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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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청 스포츠단 복싱부 감독
      제8회 태국 방콕 아시안게임 복싱 밴텀급 금메달 리스트   황철순
    “언젠가는 내 고향 고성에서 큰 체육관을 건립하여
    고향후배들을 양성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동해면 양촌리 덕곡마을 출신, “나비같이 날아서 벌같이 쏜다” 복싱 철학
    7년간 국가대표로 복싱계 주름 잡아, 2002년부터 서울시청 복싱부 감독 숱한 국가대표 선수 배출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한국 여자배구 동메달리스트 정순옥 씨와 결혼

    “황철순 금메달입니다. 금메달!”
    지금의 50대이상의 고성사람들중에는 1978년 제8회 태국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고성출신 복싱 밴텀급 황철순 선수가 당시 버마선수를 누르고 금메달을 따던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1978년 제8회 태국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복싱 10체급에서 금메달 5, 은메달 2, 동메달 3개를 땄다. 금메달리스트는 밴텀급의 황철순, 라이트급의 최충일, 라이트 웰터급의 김인찬, 웰터급의 황충재, 라이트미들급의 박일천 등 쟁쟁한 선수들이었으나 그 중 가장 압권은 4연속 RCS승을 거둔 황철순 선수였다.
    황 선수는 그 전 대회인 제7회 이란 테헤란 아시안게임 플라이급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터라 기쁨이 더했다.
    황철순은 54년 동해면 양촌리 덕곡마을 570번지에서 아버지 황완수씨와 어머니 김우남 여사 사이의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 부산으로 이사가 동신초등학교를 다닌 황철순은 서울의 배명중학교에 진학했으며 3학년때까지는 야구선수 생활을 했다.
    그러나 야구는 황철순에게 맞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돈 없으면 못하겠더군요. 수비보다가 알까는 것도 싫었고요”
    소년 철순은 하루는 집앞을 지나가다가 복싱도장을 발견하고는 복싱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68년 겨울 어느날 이었다.
    그 당시 철순의 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보온병을 최초로 개발하여 엄청난 돈을 벌었다. 주산학원에 다닌다는 핑계를 대고 철순은 복싱도장을 다녔다.
    ‘너무 약하다’는 주위의 평가도 있었으나 “나비같이 날아서 벌같이 쏜다”는 당시 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의 말을 떠올리며 ‘안 맞고 때리면 이긴다’는 복싱철학을 가다듬었다.
    “복싱이 재미있고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72년 전국체전에 서울 대표로 출전한 황 선수는 금메달을 땄고 73년 드디어 국가대표에 올라 80년까지 7년간 아무추어 복싱계를 주름잡았다.
    “국가대표가 되고나서 내 고향이 고성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했어요”
    이 당시 한일합섬으로 자리를 옮긴 황 선수는 김중원 회장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별 어려움 없이 복싱을 계속했다.
    그는 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72년 독일 뮌헨 올림픽금메달리스트 쿠바선수 말트레제를 이기는 등 3연속 승리했으나 8강전에서 찰스누니라는 미국 선수에서 패하고 말았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몬트리올 올림픽은 그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다.
    그의 부친이 올림픽 출전을 앞 둔 아들의 병적확인서를 떼러 병무청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숨지는 불행을 겪었기 때문이다.
    77년 한국화약에 입사한 후 78년 제8회 태국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황철순은 그 해 대한체육회(회장 김택수)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야구의 이선희 선수와 함께.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대한민국이 미국과 함께 정치적인 이유로 참가하지 않는 바람에 그는 아무추어선수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조차 놓치고 말았다.
    그 후 ‘프로에 가면 돈 많이 준다’는 말을 듣고 프로선수로 전향했으나 프로는 체질과 적성에 맞지 않아 82년 4월, 5전5승의 전적을 남긴 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동국대학교 경찰 행정학과를 졸업한 황철순은 97년까지 한국화약에서 코치생활을 했다.
    90년 북경아시안게임 당시 금메달 리스트인 변정일, 조인주 선수등을 길러내기로 했다. 97년부터 98년까지 서울시청 코치생활을 한 그는 옳고 그럼에 따른 성격이 분명한 탓에 감독밑에서 코치생활을 하는데 많은 애로를 겪었다.
    이 후 2002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시청 복싱부 감독을 하고 있다.
    그동안 황감독이 길러낸 선수는 7년 연속 대한민국을 제패하고 2000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김기석과 2006년 동아시아 경기대회 금메달리스트 한순철 등 국가대표 선수만 수십명에 이른다.
    현재 12체급 중 한순철 등 5명의 국가대표 선수가 황 감독의 제자들이다.
    황 감독의 가족은 스포츠가족으로 그의 부인은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가 동메달을 딸 당시 주역인 정순옥씨이다.
    황씨는 정씨와 6년 열애 끝에 79년도 결혼에 골인했다. 슬하에 현미, 윤미, 진숙, 동민 등 1남 3녀가 있는데 셋째 황진숙은 현대건설 배구선수로 있다가 올해 단국대에 진학했다.
    복싱인생을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황 감독은 “늘 뿌리를 잊지 않고 있다”면서 “언젠가는 내 고향 고성에서 큰 체육관을 건립하여 고향후배들을 양성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그의 애향심이 깊게 묻어나는 말이었다. 고성출신 유명 복서 황철순의 소망이 현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 고성미래신문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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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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