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봉황이라 부르고 서양에서 불새(피닉스(phoenix)라고 부릅니다.
봉황이란 수컷인 봉(鳳)과 암컷인 황(凰)을 함께 이르는 말로, 용이 학과 연애하여 낳았다는 상상의
새이다.
봉황은 고대 중국의 전설에서 유래된 상상의 새로 어질고 현명한 성인과 함께 세상에 나타나는 새이다.
수컷을 봉(鳳)이라하고,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지만 본래는 암수를 구분하지 않고 '鳳'자만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봉황의 원 뿌리는 우리 동방 배달국에서 나갔다.
우리가 역사를 잃어버리므로 인하여 모든 동양문명이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뒤집어져 있는 것이다.
중국의 고대 문명의 뿌리로 받드는 태호복희씨나 염제신농씨 모두 동방 배달족이다.
동북아의 모든 문명의 시원은 배달국에서 비롯한다.
고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봉황의 생김새는 닭처럼 생겼지만 5색의 깃털 무늬를 지니고
울음소리는 5음을 내며, 오동나무에 깃들이고, 대나무의 열매를 먹고 산다는 상서로운 새로서,
봉황은 다섯 가지 덕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데
머리가 푸른 것은 인(仁),
목이 흰 것은 의(義),
등이 붉은 것은 예(禮),
가슴 부분이 검은 것은 지(知),
다리 아래가 누른빛을 띠는 것은 신(信)을 상징한다.
덕·의·예·인·신을 골고루 갖추고 있으므로 용, 기린, 현무와 함께 사령(四靈)이라 불리었다.
또 사멸이 있을 수 없는 구원의 상을 상징한다.
또한 봉황은 방위로는 남방을 수호하며 불을 상징한다.
불은 곧 문명을 의미한다.
봉황은 아주 상서로운 새로서 동방에 있는 군자(君子)의 나라에서 나와 사해(四海) 밖을 날아 곤륜
(崑崙)을 지나 지주(砥柱)의 물을 마시고 약수에 깃털을 씻은 뒤 저녁에 풍혈에서 자는데 이 새가
세상에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태평해진다고 하여 태평성대를 예고하는 상서로운 새로 여겨져 궁궐의
문양으로 많이 사용되기도 했다 합니다.
따라서 동방의 모든 문명이 동방 배달국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봉황은 어떤 생물이 신령화된 것이라기보다는 용과 마찬가지로 자연현상, 특히 바람이 의인
화되어 생긴 상징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더 자세한 봉황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로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봉황의 머리 앞쪽은 기린의 수컷,
뒤쪽은 사슴, 몸은 뱀, 꽁지는 물고기와 같다"라고 되어 있으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여덟가지 짐승의
좋은 형상만을 갖추고 있다고 했는데 앞모습은 군신의 의를 지키는 기러기며, 뒷모습은 어진 성군을
상징하는 기린이다.
턱은 천심을 전달하는 제비를 닮았고,
부리는 어둠을 몰아내고 밝음을 불러내는 닭의 부리를 닮았다.
목은 풍년과 다신을 불러들이는 뱀의 목이고
꽁지는 물고기 꽁지인데 잘때도 눈을 뜨고 자며 언제나 무리지어 다닌다하여 병권(兵權)을 상징한다.
이마는 결백하고 장수하는 황새의 이마요, 등은 재앙을 막고 앞일을 예견하는 거북이의 등이다.
봉황은 열가지 동물의 장점을 두루 갖추었다.
앞모습은 기러기(신의를 생명처럼 지킴),
뒷모습은 기린(슬기와 재주를 갖춘 현인),
턱은 제비(비를 오게 하는 재주와 부귀 및 장수),
부리는 닭(여명이 다가오는 것을 가장 먼저 감지),
목은 뱀(풍년과 다산), 꼬리는 물고기(병권, 兵權),
이마는 황새(고귀, 고결, 장수),
뺨은 원앙(원만한 가정, 사회, 국가),
몸 무늬는 용(뛰어난 인물의 상징. 발가락 5개면 황제, 4개면 제후, 3개면 재상),
등은 거북(장수, 예견 능력)를 닮았다.
깃털빛은 빨강, 파랑, 노랑, 흰색, 검정 등의 5색을 띠며,
울 때 5음을 내고, 오동나무에 깃들며,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고 한다.
봉황의 속성은 백성을 다스리는 군왕의 덕목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왕이 집무하는 정전의 천장에 봉황이 그려져 있다.
현재 경복궁 정전의 천장에서 봉황 무늬를 볼 수 있다.
봉황의 기원을 풍신(風神)에 두는 이유는 봉(鳳)자가 풍(風)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산해경(山海經)」에 보면 봉황은 태양을 마주하는 조양(朝陽) 골짜기의 단혈산(丹穴山)에 살고 있다
고 한다.
그래서 사해(四海)의 밖을 날아 곤륜산(崑崙山)을 지나 지주(砥柱)의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 깃을
씻고 저녁에 풍혈(風穴)에서 잔다.
그리고 5색의 깃털 무늬를 지니고 울음소리는 5음을 내며, 오동나무에 깃들이고, 대나무의 열매를
먹고 산다고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나 삼국시대 전돌에 봉황이 보이기는 하지만, 성군의 상징으로 봉황이 본격적으로
많이 사용된 것은 고려조 이후, 특히 조선왕조가 열리게 되면서 부터이다.
봉황은 성천자가 출현하거나 성군이 덕치(德治)를 펼쳐 천하가 태평할 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는데,
모든 새들의 군주이므로 이 때 뭇 새들이 따라 모인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군왕은 자신의 치세 때
에 봉황이 나타나기를 고대하였다.
또한 봉황의 생김새나 행동거지는 제왕의 속성과 같다 하여, 그 자체로 군왕을 상징하기도 한다.
궁궐 전각의 기둥이나 천장, 왕의 수레나 흉배 등 궁궐 장식에 봉황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 문장과 국새에도 봉황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금슬 좋은 부부, 혹은 여인을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에 부인들의 머리장신구나 혼례복, 혼수장롱
에도 많이 보인다.
봉황문(鳳凰紋)
새 문양은 세계적으로 두루 애용되어 왔던 문양으로 현실의 조류형태보다는 원시적 희망과 소원을
형상화한 것이 많다. 봉황은 용, 기린, 거북과 함께 사령문으로 신성한 네 동물중 하나이며, 영조(靈
鳥)중 으뜸이다. 우리나라에는 唐代 이후 봉황문이 전래되어 주로 궁중의 왕비복에 사용되었다.
용이 남성적인것에 비하여 봉황은 여성적이다. 수컷이 봉, 암컷이 황이라고 구별하나 형태상으로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대표적인 상상속의 동물인 봉황은 길상문양으로 왕과 왕비의 의
복에 애용되었다.
곽박(郭璞)의 주(註)에서 봉황의 형태에 관하여 언듭된 내용을 보면, “계두(鷄頭), 사경(蛇頸), 연함
(燕?), 귀배(龜背)이기도 하며 더욱이 어미가 아름다운 것으로 높이는 6척이고 소리가 오음(五音)에
맞고 오동(梧桐)이 아니면 깃을 틀지 않으며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봉황은 단물이 솟는 예천(醴泉)의 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고 한번 날았다 하면 뭇새가 따라 난다.
휘황찬란한 황금색 꿩의 날개와 오색찬란한 공작의 꼬리를 갖추고 창파에 나는 새 같은 모습이라야
한다.
온세상의 일을 다 알고 치란(治亂)이 일어나는 것을 어느 새보다 먼저 알았고 밝고 어진 임금이
나타나 천하가 태평해지면 그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천상계의 팔선인과 사바세계에 사는 인간의
중간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봉황문은 조선시대에 와서는 본래의 계형(鷄形)으로 환원됨을 볼 수 있고 이조 특유의
단순한 형식으로 변형되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에는 새 중의 왕인 봉황이 왕실의 상징으로 씌여져
왕비의 흉배, 황태자비의 적의 선 장식이나 대란치마의 밑단에 운문과 함께 사용되었다. 또한 각종
가구를 비롯하여 의복, 장신구, 도자기, 서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민간의 베게모, 장롱,
의복, 침상, 반짇고리, 경대함에는 봉황과 새끼 일곱 마리를 그린 구봉도(九鳳圖)가 애용되었다.
- 글쓴이: 秉哲(健秀宗中) -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림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