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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공(遯庵公) 찬(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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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IP: *.234.238.79)조회 수: 2046, 2009-09-18 23:20:28(200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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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강공파 2세 돈암공(遯庵公) 찬(璨) 사적
아버지 : 용강공(龍岡公) 야제(冶躋)
박사공파 17세 (용강공파 2세)
휘 찬(璨) 자 휘서(輝瑞) 호 돈암(遯庵)
증 예조참판(禮曺參判)
配 : 정부인 전주최씨(貞夫人 全州崔氏)
아들: 귀일(貴逸)
숙종(肅宗 27) 戊辰(1688)년 9월 10일 출생 영조(英祖 24) 戊辰(1748)년 졸
묘 : 통영시 광도면 황리 면화산 팔천동선영 卯坐
돈암공(遯庵公) 행상行狀)
(1968년 발행한 진주강씨 세보단 세덕록에 실린 돈암공 행상 전문으로 용강파 9세손 석암공 종위 선조님이 쓴글이다.)
府君(부군)의 諱(휘)는 璨(찬)이요 字(자)는 輝瑞(휘서)라
부군의 이름은 찬이요 자는 휘서라
上祖諱二式은 高句麗兵馬元帥라 自後로 簪組不絶(잠조불절)하야 多聞人(다문인)이라
시조는 이식 고구려병마원수이니 이후로 부터 많은 인물이 끓이지 아니하다.
考諱는 冶躋요 號는 龍岡이니 蔭通德郞이요 妣는 晉陽鄭氏 光時의 女라
이름은 야제요 호는 용강이니 음(명예벼슬) 통덕량이요 어머니는 진양정씨 광시의 딸이다.
以萬曆戊辰九月十日에 府君이 生於京機道果川管岳山下하시니
이조숙종27 무진(1688)년 9월 10일에 경기도 과천 관악산 아래서 태어나셨다
生而魁傑(생이괴걸)하사 有大人風範이라
자라면서 부터 괴걸(생김새나 재주가 뛰어남)하여 큰 사람이 될 풍체를 지니셨다.
當萬曆壬辰하야 出米數百石하야 以餉明軍(이향명군)하고
임진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쌀 수백석을 명군의 군량미로 내어 놓으시고
奉兩親南下之固城下야 隱居講學(은거강학)하야 高尙其志(고상기지)하시니
양친 부모를 모시고 고성으로 남하하시어 은거하시면서 학문에 전념하시고 마음을 다스리시었다.
時人이 比擬於漢之子陵水鏡(비의어한지자능수경)이라 有薦干朝(유천간조)하니
그 당시 사람들은 왜구의 침략을 걱정하고 조정에 임할것을 간하였으나
*朝廷이 郞徵以大司憲(랑징이대사헌)이어늘 及託風眩不就(급탁풍현불취)려니
조정 대사헌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至英廟朝(지영묘조)에 贈禮判賜錄券(증예판사록권)하니
영조가 승하하시던 해에 증 예판의 벼슬을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至誠養二親(지성양이친)에 晨昏定省(신혼정성)과 菽水溫淸(숙수온청)을 終始不懈(종시불해)하시고
정성으로 기른신 양친에게 일찍혼인하여 숙수온청을 해아리지 아니하고 한결같이 보살피시었다.
원고 작성중입니다.
*조정(朝廷) : 임금이 나라의 정치를 신하들과 의논하거나 집행하는 곳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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