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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내급사공 인문(引文)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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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IP: *.200.34.3)조회 수: 2162, 2009-06-04 10:25:41(200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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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내급사공 인문(仁文) 사적
2세 전중(殿中) 내급사공(內給事公) 휘 인문(引文) 문과 급제, 전중(殿中) 내급사(內給事)역임,
사적명 : 박사공파 갑산 도선영
소재지 : 경남 합천군 율곡면 갑산리
시향 : 음력 10월 10일
아버지 啓庸(계용)
2세 引文(인문) 아버지 따라 일본에 간 효자
문과 급제 전중 내급사 역임 1274년 1차 일본 정벌때 참전한 사실때문에 1281년 (고려 충렬왕) 5월4일 고려군 도원수 김방경의
서장관 으로 기용되어 원나라 2차 동정에 참전하게 되었다.
10만 고려,원나라 연합군은 2차로 함포 (지금의 마산)을 출발하여 일본 정벌에 나서게 되었다
대마도를 정벌하고 이어 파죽지세로 일기도 등을 공파하고 하까다에 상륙하려다 1차 정벌때와 같이 또다시 폭풍우를 만나
싸우지도 못하고 수차 죽을 고비를 격고 본국으로 돌아와 후손들에게 "내가 학자가 아니였더라면 그처럼 위험한 겪지 아니
했을 것이다 다시는선비의 제주를 나타내지 말라" 라는 말은 여지승람에 실려있다.1994년 대동보 편찬 후 손자 봉단이 있는 경남 합천군 율곡리 갑산리 뒷산 임좌(壬座)에 봉단과 비를 세웠다.
아들 : 師瞻(사첨) 고려 감찰어사
이후 급사공의 훈계 때문에 급사공의 아들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과 손자 정용위대장군(精勇衛大將軍)
창부(昌富) ,진원부원군 창귀(昌貴), 삼사좌윤(三司左尹) 창수(昌壽.)까지는 과거를 거치지 않고 음직으로 벼슬을 하였으며
박사공의 5세손인 문경공(文敬公) 군보(君寶) 대(代)에 이르러 과거길을 밞기 시작하여 조선조 5백년 동안에 140여명의
문과 급제자가 탄생되었으며 박사공을 중시조(中始祖)로 모시고 있고 전국에 산거하고 있는 후손이 진주강씨 전체의 80%에
해당된다.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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