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파조 1세 박사공 계용(啓庸)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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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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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강씨의 큰 산맥...박사공파

    숱한 명신과 명장을 배출시키고
    동방 대성으로 자리한 박사공파
    민족의 큰 성씨로
    겨례의 등불로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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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공파 1세 계용(啓庸)  진주강씨 대파조        

    고려시대의 문신.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 子監 ) 박사( )를 지냈다.
    1274년(원종 15)
    통신사 김방경()을 따라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원나라가 일본을 공격할 때 서장관으로서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이 때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고 돌아와,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국자박사란 고려시대 관제의 하나로 국자감(國子監)의 박사이다.이는 고려시대의 최고교육기관으로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에 해당되며
    당시 국가기관의 주요 인재를 양성 배출한곳이다.

     

      박사공에 대한 문헌을 살펴보면 조선초기의 대학자 양촌(陽村) 권근 (權近-三館大提學)선생의 공목공 시(蓍)의 묘지명에
    나오는 기록이다.


     여기에 옮겨보면 [건문 2년 경진(조선 정종 2) 서기 1400] 겨울에 진양
    강공 회백(淮佰-통정공)이 그의 아버지 공목공의
    형력(行歷)을 가지고 와서
    보이며 나아게 묘비문을 써 주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우리 아버님은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으로
    몸을 다스리시고 관직에 있어서는 신중을기하셔서 명예
    와 차적이 크게 나타나셔서 가이 후세에 전할만한데 진실로 비석에
    새겨
    두지 못하면 자식된 도리가 아니다] 고 하면서 지팡이를 던지고 이마를 조아려 울면서 간청하니 내가 본시 인척관계일
    뿐 더러 공의 부자와 안지가
    오래되어 의리상 사양하지 못하엿다.  

      삼가 살피건데 공의 휘는 시(蓍)니 진주의 이름난 집안이다. 4대조 국자
    박사 휘 계용이시고 그의 아드님은 전중내급사
    휘 인문(引文) 이시다. 두분
    다 선비로 이름이 높앗다.   
    박사공이 처음 일본통신사 서장관이 되시어 일본에 다녀왓으며 그 후
    원(元)나라가 일본을 정벌할 때 내급사공도 길을 잘안다
    하여일본에 가셨다가. . . ]
    라고 하엿으니 이 묘지명을 지은 권근 선생은 당대의 최고 학자였으며 정치가 였다.

      또한 문경공 휘 군보(君寶)가 돌아가실 때 그 만사(輓詞)도 지었다.   때문에 박사공과 후손은 확실한 문헌상에 나타난
    박사공을 족보상의
    1세로 한다.  고려중기 1231년 (고려 고종 18) 원(元)나라가 고려로 침입해 왔다.     
    원나라를 세운 몽고족은 미개한 부족국가였으나 칭기즈칸(成吉思간) 즉
    태무진(鐵木眞) 이라는 영웅이 나서 전 몽고를 통일하고
     중국본토의 송(宋)
    나라를 멸망시키고 인도북부, 남지나, 중앙아시아를  평정하고 멀리 이란, 러시아의남부, 동유럽의 일부 제국을
    점령 하므로서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강대한 대제국을 건설 하였다.   

      이 원(元) 나라가 고려(高麗)로 쳐들어오니 여러차례 격퇴하였으나 힘이
    딸려 왕은 강화도로 몽진하고 계속 항전하였다 
    그러나 
     1259년(고려 고종 46)에 결국 몽고에 굴복하고 1270년(고려 원종 11) 개성으로 환도하였다. 
    이로 인하여 원은 섬나라 일본을 넘보게 되었다.
    고려와 일본의 관계는 원래 원만 하였으나, 1223년경 부터 왜구(倭寇)의기록이 처음 나타난 이후 이 문제로 양국간에 수차례 통신사가 내왕하였고     1274년(고려 원종 15) 몽고가 일본을 정벌 하기까지 계속되었다.

      평화적으로 항복받기 위해 여러차례나 고려의 통신사를 보냈다.  이 때 박사공이 일본을 다녀온 후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몽고와 고려의 연합군이 일본정벌에 앞서 우리 족보상 기록에는 1281년
    (고려 충열왕 7) 통신사를 파견할 때 계용 선조의 아들
    이신 인문께서 길을 잘
    안다하여 통신사의 서장관으로 기용된것이다.   

    묘는 실전되어 알 수 없다.  다만 1994년 박사공파 대동보 편찬후 후손
    들이  갑산 용덕산에 봉단을 모시고
    사적비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  양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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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산선영에 대하여

    경남 합천군 율곡면 갑산1리에 소재하고있는 갑산선영은  1세 박사공 2세 급사공, 3세 어사공,

    4세 대장군공과 진원부원군공의 봉단및
    묘소가 모셔져 있어서 전국 강씨의 약70%에 달하는

    100만 후손의
    도선영인데.  시제날은 음력 10월10일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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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중부지방에서 오는 길은 대구를 거쳐 88고속도로 고령 나들목(I.C)에서 합천으로 오는 길과

    대진고속도로 에서
    88고속도로 거창 나들목( I.C )에서 합천으로 오는 길.

     남해안 고속도로 진주 나들목( I.C )에서 합천으로 오는 길.

     남해안 고속도로 군북 나들목( I.C )에서 합천으로 오는 길.

     구마고속도로 창녕 나들목( I.C )에서 합천으로 오는길이 있다.

    네이버 지도에서 위치검색( A 표 지점)




      갑산제

    wright

    Profile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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