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 강이식 대모달(대장군=병마도원수) 고,수전쟁
  • 운영자 (IP: *.200.34.132)
    조회 수: 1721, 2009-04-21 07:03:48(2008-08-01)
  • 오늘날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것은 오랜 세월을 통하여 선조들께서 쌓으신 어진 덕과 빛나는 공덕의 결과임을
    아무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우리 진주강씨는 멀리 고구려 시대 구국공신이신 병마도원수공 휘 이식장군을 동방시조(東邦始祖)님으로 하여
    1400여년에 걸쳐 빛나는 조상님들의 공덕으로 면면히 이어나와 오늘날 동방(東邦)의 대성(大姓)이 된것이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거목으로 성장하여 그 지원이 울창하고 수원(水源)이 깊은 물은 그 흐름이 장구(長久)한 것은
    대자연(大自然)의 원리(原理)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조상의 역사가 뚜렸하고 대대로 봉작이 엄습한 성씨는 그 자손이 번성(繁盛)하고,
    역대를 통하여 국가와 사회를 주도해 나가고 있음은 지나간 역사가 이미 증명(證明)하고 있는것이다.

    우리 강성(姜姓)은 인류창시(人類創始)와 더불어 득성(得姓)한 염제신농(炎帝神農=姜石年) 이래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성씨로써 동방시조 휘 이식장군 이후로 1400여년간을 계승하여 내려와
    작간에 명공거경(名公鉅卿)이 무수히 배출되어 자연히 동방의 대성(大姓)으로써 인류사 가장 오래 된 성씨로
    단일본 명문거족(單一本 名門巨族)이 되고 있음은 자타(自他)가 공언(共認)하는 사실(事實)이다.

    아! 장하도다.
    성인(聖人)의 예법(禮法)을 지은 뜻이 어찌 우연할 것인가!
    안으로는 수신과 제가에 힘쓰고 나아가 나라에 까지 베풀어 세상에 모범이 되며 인심을 이끌고
    종족을 화목케하고 구족(九族)을 친목케함이니 정치하는 데에도 없을 수가 없으리로다.

    우리민족은 일찌기 백두산 흑룡강(黑龍江) 일만리 평야 위에 나라의 첫 터전을 열고
    유구한 세월을 거쳐 오면서 민족으로써 집단(集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
    대륙의 침략세력(侵略勢力)에 저항하여 피로써 싸우기에 편한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한무제가 수륙(水陸)으로 군사를 끌고 나와 침략(侵略)했을 때 희생된 이가 그 얼마 였던지...
    강토의 일부일 망정 저들에게 빼았겨 한사군의 설치(設置)를 보았던 것이나
    400여년의 끈질긴 저항 끝에 끝내 고구려 사람의 손으로 수복하고야 말았다.

    대륙의 세력이 바뀔적 마다 그들의 새로운 야망에 저항할 수 밖에 없었기에 일찍이 공손씨(公孫氏)와도
    싸우면서 장열(壯列)한 유혈(流血)을 아끼지 않이했으며,
    마침내 수,당양조(隋,唐兩朝) 五帝 70년 동안 설인귀( 薛仁貴 )700만 대군의 침략을 겪으면서
    매번 그들을 물리친 민족의 의기(義氣)는 우리들의 혈맥(血脈) 속에 전해 내려 온 것이다.

    그 옛날 우리 고구려는 압록강(鴨綠江) 유역을 무대로 하여 만주와 연해(沿海)의 서쪽으로
    요하(遼河)유역까지 강역을 펴갔던 일대강국(一大强國)이었고 다른 한편 중원대륙에서는
    수문제가 일어나 남,북조를 통일시킨 다음 그 세력을 멀리 몽고(蒙古)와 서역(西域)에 까지
    뻗어 나갔던 막강한 제국이었으므로 서로의 충돌을 피할 수 없어 드디어
    우리 고구려는 민족항쟁(民族抗爭)을 벌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구려 영양왕 8년 서기 597년에 수문제(隋文帝)가 진(陳)을 병합하고 지나(支那)를 통일한지 17년이라...
    수나라가 그간 연곡(年穀)이 자주 풍등(豊登)하고 갑병(甲兵)이 매우 풍족하니 고구려에 대하여
    자웅을 다투자 하여 무망(誣罔)을 극하고 패만(沛慢)이 심한 매우 모욕적인 글을 보내어 왔다.

                        『요하(遼河)가 넓다고 한들 장강(長江)에 비할 것이며

                        고구려 인구가 많다고 한들 진국(陳國)에 비할 수 있을 것이냐

                           하루속히 신하로 칭하고 조공을 받쳐 섬기며 순종하라

                            그렇지 않으면 단 한사람의 장수만을 파견해도

                                           모든 문제를 쉽게 끝낼 수 있다』


    영양열제가 이 모욕적인 글을 받고 대노하여 군신들을 모아 놓고 회답할 글을 의논할 때
    군신들의 의견이 여러갈래로 나뉘어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였다.
    이에 강이식장군이 더는 지켜 볼 수 없어 사자후를 토하시길
    [이 같이 무례한 글은 붓으로 답할게 아니라 칼로 답해야 함이 마땅하다]하시며
    개전(開戰)할 것을 주장하시니 열제가 이를 낙종(樂從)하여 강장군을 병마원수(兵馬元帥)로 삼아
    정병 오만을 발하여 임유관(臨揄關)으로 향하게 하고 먼저 예병(穢兵) 일만으로
    요서(遼西)를 선재공격하여 수병을 끌어내시어 걸안병 수천으로 바다를 건너 지금의
    산동(山東)을 치게 하니 이로써 수나라와의 기나 긴 전쟁 그 서막이 오르게 된다.

    삼국사기에는 강이식장군의 이름 석자도 보이질 않이하니 이는 김부식이 수서(隋書)만을
    초록(抄錄)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이지만
    서곽잡록(西郭雜錄)에는 강장군을  임유관전쟁(臨유關=서기 598년)의 병마원수라하고
    대동운해(大東韻解)에는 강이식장군을 살수전쟁(살수전쟁=서기612년)의 병마도원수라하고  하였다.

     체크!   ->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와大東韻府群玉(대동운부군옥) 그리고 남한보(南漢譜).

    다음해인 영양열제 9년은 신라 진평왕(眞平王) 23년 백제 성덕왕(聖德王)45년이며
    수문제(隋文帝)18년(서기 598년)이다.

    고구려가 요서(遼西)를 급습하여 수의 요서총관(遼西總管) 장충(張忠)과 접전하다가 거짓 패한 척하여
    임유관으로 후퇴하니 이에 자만한 수문제가 30만 대병을 들어 한왕(漢王) 양량(楊諒)으로 행군총관(行軍總管)을
    삼아 바다로 뜨게 하니 이는 비록 평양으로
    향한다고 성언(聲言)하나 실상은 양선(糧船)을 거느리고 요서로 와서
    양량군(陽諒軍)에게
    군량(軍糧)을 보급하기 위함임을 눈치채신 강장군이 수군을 거느리고 바다에서 영격(迎擊)하여
    양선을 침몰시키고 군중(軍中)에 명하여 벽루(壁壘)를 지키고 출전하지 말라하셨다.

    그러니 수병은 식량이 없는데다가 수개월이 흐르메 기아와 질역(疾疫)으로 사망이 낭자하여
    퇴군하게 되니 강장군이 바로 추격하여 수상(水上)에서 적을 거의 섬멸시키시고
    무수한 군자기기(軍資器機)를 가지고 개선하시었다.
    이 때에 수군 8~9할이 수장되었고 살아 돌아간 자는 이천 백여명에 불과 하였다.

    고구려 영양왕 8년 서기 597년에 수를 징벌할 때 병마원수로써 수병을 임유관에서 대파하시고
    영양왕 23년 서기 612년 살수대첩 때에 병마도원수로써 을지문덕과 같이 수의 113만대군을 섬멸시키셨다.
    이 전쟁으로 수나라는 망하고 당(唐)나라가 들어선다.

    사적이 조선상고사(신채호 저)와 국방정훈지 (이선근박사 저)에 기록 되어 있다.
    봉산사(鳳山祠)를 진주(晋州)에 세웠으며 서기 1975년에 국가에서 봉산사를 성역화하여 영원히 추모한다.

    강장군의 묘소는 고구려 심양현 원수림(지금의 중국 요녕성 무순현 원수림역전)에
    병마원수 강공지총(兵馬元帥姜公之塚)이란 큰 비가 서있다.

              img_2sik.jpg

               봉산사에 사적비를 세웠으며 비문을 전주후인 문학박사 노산 이은상이 지었다.

                                                   아! 장하시도다,

                                        해같이 영롱한 민족의 영웅(英雄)이여!

                 역사의 구름 뒤에 그 모습 가리웠다 나타 나 환하시오니 더욱 눈부십니다.

                 임유관 싸움터에 요하(遼河)의 파도 속에 수병 30만을 쓸듯이 무찌르고

                                 우리님 개선(凱旋) 하실 제 그 영광이 어떠하던고!

                 1300여년이 바람같이 지났어도 장하신 그 이름 겨레 가슴 속에 새기옵고               

                                     피 끓는 의기의 전통 자손 만대에 이어가리라.

                                                      전주 후인        노산      이은상    찬.

               이상 작성자 진주강문 박사공후 통계공 후 법전손 破天荒 昊聖 姜錫泰 통계공파 족보인용記.


    Profile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림니다.

     

     야무진의 포토에세이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21 관리자 957 2008-07-31
20 운영자 1728 2008-07-31
19 운영자 1821 2008-07-31
18 관리자 1554 2008-07-31
17 운영자 1603 2008-07-31
16 관리자 1736 2008-07-31
15 관리자 4232 2008-07-31
14 운영자 1456 2008-07-31
13 운영자 2527 2008-07-31
12 관리자 2356 2008-07-3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