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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晉州 姜氏)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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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IP: *.239.83.156)조회 수: 4231, 2008-07-31 19:45:57(200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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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강씨(晉州 姜氏)는 한국의 여러 성씨 중 하나로, 엄밀한 의미의 명칭은 진양 강씨(晉陽 姜氏)이나,
진양군과 진주시는 예전부터 자주 같이 관할되었기 때문에 흔히 '진주 강씨'로도 불린다.
시조는 고구려때의 강이식으로, 그의 후손 강진(姜縉)이 신라(헌강왕)때 태중대부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으로
재임중에 진양후(晉陽侯)로 봉해 지면서 본관을 진주(晉州, 진양, 진산으로 불리기도 함)로 하게 되었다.
엄밀한 의미의 명칭이 '진양 강씨(晉陽 姜氏)'인 것도 강진(姜縉)이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주 강씨는 크게 은열공파, 박사공파, 소감공파, 관서공파, 인헌공파의 5개파로 구성되는 데, 은열공파가 가장 먼저 발원하였지만,
규모는 박사공파가 가장 크다. 인헌공파는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 장군의 후손들의 파이기도 한데, 이 파만 별도로 금천 강씨라고도 부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성씨는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서 '강(姜)'자를 씨(氏)로 삼는 성씨는 진주(晉州)를 단일본으로 하고 있다.
은열공파
은열공파(殷烈公派)는 진주강씨(晉州姜氏)의 한 파이다. 진주강씨는 크게 은열공파, 박사공파, 소감공파, 관서공파, 인헌공파로 나뉜다. 이 중 은열공파는 고려시대 귀주대첩에서 강감찬과 함께 공을 세운 강민첨(姜民瞻)을 파시조(중시조)로 한다.
박사공파
박사공파는 진주강씨의 파중 하나이다. 진주강씨는 크게 은열공파, 박사공파, 소감공파, 관서공파, 인헌공파로 나뉜다. 박사공파는 고려시대 국자감 박사를 지낸 강계용(姜啓庸)을 파시조로 한다. 손자 강사첨(姜師瞻)이 어사를 지냈다 하여 어사공파(御史公派)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감공파
소감공파(少監公派)는 강위용(姜渭庸)을 파시조라 하고 있다. 강위용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중엽이후 의 인물로서 박사공 연대와 거의 비슷한 연대의 인물로 보고 있다. 휘(諱)자가 다 같은 용(庸)자로서 항렬이 같다하여 박사공의 아우(弟)파로 박사공파와 족보도 함께하고 항렬자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관서공파
관서대장군(關西大將軍) 강원로(姜元老)를 파시조로 하고 있다. 정확한 연대는 알길이 없으나 고려중엽인 고종(高宗)때 인물로 보고 있다. 박사공파보 상계에 기록된 교감공(校勘公) 휘 도(諱度)이하에 [원용(遠庸)자 기문(起文)후손(後孫) 원로(元老)]로 기록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사공, 소감공, 시중공, 이상 세명을 3 형제파로 인증해 내려오고 있으나 관서대장군파는 시중공을 파조로 모시지 않고 후손인 관서대장군을 파조로 모시고 있을뿐더러 연대 순으로 따져 보아도 박사공, 소감공, 시중공을 3 형제파로 보아서는 안된다.
인헌공파
인헌공파는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姜邯贊)을 파시조로 하고 있다. 강감찬의 출생지인 금천을 따서 인헌공파를 따로 금천강씨로 부르기도 한다.
*** 우리姜氏가 언제부터 晉州로 관향(貫鄕)을 갖게 되었으며 족보는 언제부터 발간되기 시작 했나 ?
우리나라 2백70여 성씨가 각각 본관(本貫)이 없는 성씨는 하나도 없다.
각 성씨중에 글자가 같은 성씨라도 본관이 다르고 시조가 다른 성씨가 많다.(예를들어,
김해김씨. 경주김씨. 안동김씨 등). 우리 姜성은 단일 본으로 고구려 병마도원수
姜以式 장군님을 시조로 모시고 있으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우리가 진주를 본관으로 쓰기시작한 연대는 신라 헌강왕(憲康王) 서기8백70년대에
이르러 정순공(正順公) 휘 진(諱 縉)선조께서 진양후(晉陽候)로 봉해짐으로 인하여
본관이 진주로 통일된 것이다. 족보가 처음으로 발간된 것은 조선 숙종(肅宗)11년
서기 1685년 에 이르러 박사공(博士公)파에서 남한보(南漢譜)가 간행되었으며 다음으로
은열공(殷烈公)파에서 그 뒤를 이어 43년후인 조선 영조(英祖)3년 서기1727에 정미보
(丁未譜)가 간행 되었다. 박사공파에서 최초로 간행된 남한보기사(記事)에 보면
진주 남강을 사이에 두고 강안쪽과 강밖으로 양파가 사는데 그 한파는 박사공파요,한
파는 은열공파라 가록되어 있고 은열공파에서 그 다음으로 간행된 정미보에 백각(白閣)
이 쓴 서문을 보면 지주강씨가 2개파가 있으니 하나는 은열공파요 또 하나는 박사공 파란
기록이 나와 있다. 우리 姜씨 5개파(博士. 仁憲. 慇烈, 關西. 少臨) 중에서 인헌공(仁憲公)
강감찬 파 만이 본관을 금천으로 사용하고 있을뿐 그 나머지 4개파는 晉州를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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