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란대(鳳卵臺)의 유래(由來)
-
관리자 (IP: *.239.83.156)조회 수: 1736, 2008-07-31 19:43:14(2008-07-31)
-
봉란대(鳳卵臺)의유래(由來)
강문(姜門)의 구기택지(舊基宅地)가 있던 비봉산(飛鳳山:원래는 : 大鳳山)이 이곳에
있으며 이산밑에 봉곡촌(鳳谷村)이있어 강씨일족이 살았다.
이곳은 현재의 진주시 상봉서동(上鳳饍)이다. 진주의 별호(別號)는 앞서 서술한 것 외에
청천(靑川) 진양(晉陽) 진산(晉山) 진강(晉康).이라고도 했다.
고려 초기 정절공(正節公) 구만(九萬)이 大鳳山 밑 봉곡촌(鳳谷村)에 살았는데 집뒤에
큰 바위가 하나 있고 그 바위위에 작은 바위가 마치 봉황새 모양 같아 강남도사(江南道士)
가 이곳을 지나 가다가 이곳을 보고 강씨가 대성(大成)하는 것은 이 바위 때문
이라 했다.그후 상서(尙書) 홍씨(洪氏)의 형제가 모두 11명이 있는데 모두 경상(卿相)의
자리에 있어 나라의 정권이 한 집안에 쏠리니 합문지후(閤汶祗候)이지원(李之元)이 그
세력을 꺼려 몰래 사람을 시켜 봉 바위를 깨뜨리니 피가 나왔다.
이런일이 있은후 적신 척준경(拓俊京)의 참소로 洪의 형제를 포함하여 20여명이 함께
화(禍)를 입게 되었고 간악한 무리들은 대봉산 정기로 강씨 집안이 다시 득세할 것을
두려워하여 大鳳山을 飛鳳山(봉이 날아갔다는 뜻)으로 고쳐 부르게 하였고 또 봉지(鳳池)
를 부지(釜池:봉을 가마솟에 삶는다는 뜻) 로 고쳐 부르게 했다.
그러나 지나가던 도승이 [날아가는 봉황새는 알자리가 있으면 찾아 온다]고하여 봉의
알자리를 만들었는데 이곳이 봉란대(鳳卵臺)이며 지금의 진주시 상봉서동(上鳳饍)이고
그후 후손들이 이곳에 시조의 유허비(遺墟碑)를 세웠다. 끝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림니다.
| 번호 | 제목 | 닉네임 | 조회 | 등록일 |
|---|---|---|---|---|
| 11 | Webmaster | 2156 | 2008-07-31 | |
| 10 | 관리자 | 2302 | 2008-08-01 | |
| 9 | 운영자 | 1720 | 2008-08-01 | |
| 8 | 운영자 | 2756 | 2008-08-01 | |
| 7 | Webmaster | 2727 | 2008-08-02 | |
| 6 | 운영자 | 2652 | 2008-08-09 | |
| 5 | 운영자 | 2932 | 2008-09-20 | |
| 4 | 운영자 | 3655 | 2009-04-26 | |
| 3 | 운영자 | 3008 | 2009-06-04 | |
| 2 | 운영자 | 2546 | 2009-11-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