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晉州) 득관(得貫)의 유래
  • 운영자 (IP: *.200.34.3)
    조회 수: 1726, 2009-06-04 07:03:38(2008-07-31)
  • 진주(晉州) 득관(得貫)의 유래

    통일신라(헌강왕 : 憲康王 ) 때 태중대부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 정순공(正順公) 강진(姜縉) 선조님께서

    진양후(晉陽侯)로 봉(封)해 사실(史實)을 근거로 고려 중엽부터 본관(本貫)을 晉陽(진양), 晉山(진산)으로

    하다가 1900년대 이후에 진주(晉州)로 본관을 삼았다. 晉陽(진양), 晉山(진산), 진주(晉州)는 다 같은 이름이다.

    *참고문헌-남한보(1685년 간) 姜縉:崇仁殿四韻壯元 太中大夫 判內議令 贈諡正順 晉陽侯, 강씨세덕지
    (1749년 계향청 발간)

    始祖元帥公 齊康公之後而 天水縣人也 正順公 諱縉 封晉陽侯 仍貫晉陽, 진양강씨 문헌록
    (1809년 간 통훈대부 감찰공(휘 弼魯)의 서문)

    高句麗兵馬元帥 至後 正順公 諱縉 封晉陽侯 仍貫晉陽 其後 分爲四派 曰殷烈公, 曰博士公, 曰關西公,
    曰少監公 四派也


    Profile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림니다.

     

     야무진의 포토에세이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1 관리자 2301 2008-08-01
10 관리자 2354 2008-07-31
9 운영자 2525 2008-07-31
8 운영자 2546 2009-11-13
7 운영자 2652 2008-08-09
6 Webmaster 2727 2008-08-02
5 운영자 2756 2008-08-01
4 운영자 2932 2008-09-20
3 운영자 3006 2009-06-04
2 운영자 3655 2009-04-2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