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강씨 연원(淵源)
-
운영자 (IP: *.200.34.132)조회 수: 2932, 2009-04-21 06:56:52(2008-09-20)
-
[지금 인터넷에 강씨 연원보가 오자, 탈자, 오역으로 뒤범벅이 된채 떠돌고 있어 여기에 바로 잡습니다.]
다음은 1451년 경 박사공 9세이며 통정공(휘 회백)의 손자인 인재공(휘 희안)과 문량공(휘 희맹)
형제분이 지은 연원보(淵源譜) 서문이다. (현재 그 일부만 전해지고 있음)연원보(淵源譜)
序文 略曰
서문 약왈吾族得姓之源 深且久矣 維昔 安登聖母夢感神龍 而有娠誕生 炎皇于姜水 長有聖德
오족득성지원 심차구의 유석 안등성모몽감신용 이유신탄생 염황우강수 장유성덕卜羲之末代爲天子 以誕降之地因爲姓氏. 創作耒耜 醫藥 市祭 使尼蹲踞.
복희지말대위천자 이탄강지지인위성씨. 창작뢰사 의약 시제 사니준거.至于七世 而帝業遂衰 「節莖」及「克」未得承帝位 「楡」罔 雖爲宗主 同姓之侯 蚩尤 窃命罔
지우칠세 이제업수쇠 「절경」급「극」미득승제위 「유」망 수위종주 동성지후 치우 절명망有 記極 涿鹿之戰 鐵車南指 霧陣北却 自玆以後 世世襲封 至于四岳. 爲虞舜秩宗 四岳之侯
유 기극 탁록지전 철차남지 무진북각 자자이후 세세습봉 지우사악. 위우순질종 사악지후有師尙父 七十遇文王 佐成帝業 而大統未集 至于武王 克商 王位受封于齋 至于季世
유사상부 칠십우문왕 좌성제업 이대통미집 지우무왕 극상 왕위수봉우재 지우계세强臣窃命 闕後 苗裔散居各邦 枝分派別 逮于漢末 諱 冏 爲天水功曹 子 維 承忠武侯遺法
강신절명 궐후 묘예산거각방 지분파별 체우한말 휘 경 위천수공조 자 유 승충무후유법九伐中原 未捷身死 自玆以降 節侯之裔 天水爲貫 (下略)
우리 강씨 성은 그 근원이 깊고 오래되었다.
구벌중원 미첩신사 자자이강 절후지예 천수위관 (하략)
먼 옛적에 성모 안등(신농씨의 어머니)이 꿈에 신룡과 감응하여 염제신농씨를 낳았다.
염황(炎皇)은 강수(姜水)에서 덕이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여 복희씨의 말에 (복희씨의) 대를 이어 천자가 되었고,
[강수(姜水)가] 탄생지이므로 성을 강(姜)으로 하였다.
농사짓는 방법, 의술 의약, 장사와 제사법을 처음으로 만들어 [그동안] 어려웠던 백성의 살림살이를 편안하게 하였다.7대를 이어서 군주가 되었으나 절경(節莖)과 극(克)은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지 못하고 유(楡) 때에 망했다.
그러나 제후들 가운데 패권을 잡은 같은 성을 가진 맹주 치우가 왕을 무너뜨리고 실권을 잡았지만 망했다.기록에 의하면 극(極)과 탁록전장(涿鹿戰場 : 인류 최초 국가간 제후들의 영토싸움)에서
전차와 지남거(指南車 방향을 가리키는 당시의 최첨단 수레)를 이용하여
안개 속의 적진을 북쪽으로 물리친 공으로 대를 이어 사방에 제후에 봉해졌다.
우와 순 나라에서 예관을 지내고 요시대에 제후를 지낸 이후 상부(尙父)가 70세에 문왕을 만나
아직 대통을 모으지 못했던 제국을 세우는데 도왔다.
무왕(武王)에 이르러 극상(克商)이 제(齊)나라 후로 봉해졌고 말기에 이르러
강한 신하들에 의해 왕권을 빼앗기고 그 이후 묘족은 여러 고을에 흩어져 살면서 여러 파로 나누어지게 되었다.한(漢)나라 말에 강경(姜冏)이 천수(天水)에서 구실아치가 되었고,
그 아들 강유(姜維)는 충무후(忠武侯) 제갈공명의 유업을 이루려고 중원을 수없이 통일하려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이로부터 제후가 끊긴 후손들은 천수(天水)를 관향(貫鄕)으로 하였다.소원록(溯源錄) 연대미상
蓋曰 三皇以後 人莫不有姓 太昊氏風姓 炎帝氏姜姓 風之後無聞 而獨 姜氏相傳
개왈 삼황이후 인막불유성 태호씨풍성 염제씨강성 풍지후무문 이독 강씨상전至于五千年 蔓延于天下 然則 其得之先而 傳之久而 無變易者 皆莫我姜氏若也
지우오천년 만연우천하 연즉 기득지선이 전지구이 무변역자 개막아강씨약야在中國世爲華族而 一派東來 亦成望閥 謨貽學問 勳襲侯封 允文允武 裔孫千億
재중중세위화족이 일파동래 역성망벌 모이학문 훈습후봉 윤문윤무 예손천억其根深而葉茂 源遠而流長 理有所不感也
기근심이엽무 원원이유장 이유소불감야대략 말하건데, 삼황(三皇 : 복희[卜羲], 신농[神農], 女와[女와]) 이후에 사람이 성(姓)을 갖지 아니 할 수 없게 됨을 따라
태호복희(太昊 卜羲)씨는 풍(風)씨를, 염제신농(炎帝 神農)씨는 강씨를 성으로 하였다.
그러나 풍씨는 후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지 못하였으며, 유독 강씨만이 계속 후사가 전하여져서
5000여 년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온 천하에 후손이 뻗어가게 되었다.
그런 즉 고대 선조들의 사적(事蹟)이 오래도록 전해지면서도 변하거나 바뀌지 않은 성씨로는 우리 姜씨 뿐인 것이다.중국에서 여러 세대를 이어온 화족(華族) 중 일파가 동쪽(한반도)으로 오신 후로
역시 자손이 번성하여 만성이 부러워하는 벌족이 되었다.
학문을 닦아서 대대로 이어가면서 공훈을 세우고 후작으로 봉해져서 문장에도 으뜸가고 무예에도 뛰어났다.
그 후손이 천억이며, 뿌리가 깊어 후손이 무성하여 어찌 그 근원이 멀리 뻗어 내린 이치를 느끼지 못하랴.
출처 : 진주강씨 역사교과서 글쓴이 : 동국강씨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림니다.
| 번호 | 제목 | 닉네임 | 조회 | 등록일 |
|---|---|---|---|---|
| 21 | 관리자 | 957 | 2008-07-31 | |
| 20 | 운영자 | 1725 | 2008-07-31 | |
| 19 | 운영자 | 1819 | 2008-07-31 | |
| 18 | 관리자 | 1552 | 2008-07-31 | |
| 17 | 운영자 | 1600 | 2008-07-31 | |
| 16 | 관리자 | 1734 | 2008-07-31 | |
| 15 | 관리자 | 4229 | 2008-07-31 | |
| 14 | 운영자 | 1454 | 2008-07-31 | |
| 13 | 운영자 | 2525 | 2008-07-31 | |
| 12 | 관리자 | 2354 | 2008-07-3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