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桓檀古記(한단고기)와 姜氏 ○퍼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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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桓檀古記)와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 특히 한단고기 중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신시본기(神市本紀),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에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 이야기가 나온다. 태백일사가 어떻게 전수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 치하에서 오적신(五賊臣)을 권총으로 사살할려고 결행하였으나 실패하여 진도(珍島)에 유배되었던 해학(海鶴) 李沂(이기) 선생의 소장서이다. 태백일사가는 북애(北崖)의 揆園史話(규원사화)와 함께 고려 공민왕 때의 학자 李茗(이명 호는 청평)이 쓴 震域遺記(진역유기)가 이 책들의 모본(母本)이다 震域(진역)은 우리나라를 뜻한다. 사마천의 <史記> 115권 조선열전편에 한단고기 40페이지에 있는 董作賓(동작빈)의 年表(연표)에는 염제신농씨가 BC 3218∼BC 3078년 까지 존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염제 신농씨가 태어난 곳은 列山(열산 史記의 기록과 일치)이며 열산은 列水(열수)가 흘러 나오는 곳이다. 이곳은 고조선의 영역에 포함된다. 염제 신농씨는 少典(소전)의 아들이며 소전은 熊氏(웅씨)에서 갈라져 나간 후예이며 高矢(고시)의 방계이다. 少典(소전)은 안부련(安夫連) 말기에 姜水(강수)에서 병사들을 감독했다. <사기(史記)>에 염제 신농씨의 성씨는 姜, 이름은 石年(석년)이라 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에 소전의 한웅 아들 신농(神農)은 수많은 약초를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뒤에 열산으로 이사하여 낮에는 교역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편리하게 살게 하였다.<임승국 번역 주해 정신문화사 간 1986 한단고기<196∼6면> 맹자 5권 등문공장구상(藤文公章句上)에 許行(허행)이라는 사람이 맹자에게 염제 신농씨는 농사 짓는 법을 백성에게 가르치고 직접 백성과 함께 농사 짓는 것에 대하여 맹자의 견해를 묻는 글이 나온다. 염제 신농씨는 햇곡식으로 천신제를 지내는 법을 제정하는 등 인류 문화 개척에 큰 업적을 남기고 산동성에 있는 고부에서 생애를 마쳤다.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신시본기(神市本紀)에 옛날 呂尙(여상 강태공)도 역시 치우의 후손이며 강씨이며. 치우는 姜水(강수)에서 살았다. |
*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없는 나무에 잎이 피지 않듯이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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