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세 어사공(御査公) 사첨(師詹)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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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1970, 2009-04-21 07:09:49(200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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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은 전중성내급사(殿中省內給事) 인문(引文)의 독자(獨子)로 원종조(元宗朝) 서기 1265년 전후한

    연대에 탄생하신 것으로 추정된다. 元나라로 인한 오랜 전란이 강화(講和)됨에 끝이나나했더니 항몽 주체세력(抗夢主體勢力인

    삼별초군(三別抄軍)이 굴욕적인 강화를 하고 환도(還都)하는 원종(元宗)에 반역(反逆) 항몽하는 반란으로 전란은 계속되는) 

    와중(渦中)에 생장하시며 철이 날 무렵 할아버지 아버지 양위(兩位)께서 서장관에 탁배 천망배명 되시어 일본 정벌의 전쟁 터

    로 떠나심을 배웅하고 돌아오시기 내(乃) 어머니 할머니와 같이 걱정하고 돌아오신 기쁨과 함께 달라진 가정 교육을 받으며

    이제는 평화롭겠지 했더니 다시 일본 정벌의 전쟁준비에 세상이 흉흉하더니 급기야 충렬왕(忠烈王) 7년(1281) 5월4일 대대적인

    제이차 정동군이 출범할제 부군이신 내급사공께서 전번의 경험(經驗)으로 천배(薦拜)서장관으로 다시 험지(險地)에 가실제

    공의 연세는 15세 전후하였으리라 징발된 10000명의 고려군은 元軍과 함께 출정하게 될제 공과 가족은 얼마나 염려가 되었으며

    온 국민인들은 어떠하였으리요?

      오직 무사히 환국하시기만을 빌고 승전 개선하기를 원하고 또 빌었으련만 하늘은 정복(征服)의 화신 원나라편이 아니었다.
     
    하늘은 노하여 바다를 덮고 왜국을 쓰러 버릴 듯이 처들어간 원의 연합군은 태풍으로 거의 잃고 수장되어 고려군도 10000명

    중 1000여명만이 생환할제 내급사공은 하늘이 돕고 조상이 돌보아 생환하시었다.

      공은 조부 부군(祖父 父君)의 엄한 교훈을 마음속에 새기고 가문을 지키고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며 후손에게도 이 난세를
     
    넘기는 유훈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므로 장인이 당대의 권신(權臣)이오 중신(重臣)이었건만 끝내 과장에도 아니나가고

    음관(蔭官)으로 어사대 감찰어사(御史臺 監察御史)에 이르고 관직을 마감한 후 손자(孫子) 군보(君寶)의 귀(貴)로 판내의령

    참리부사(判內議令參理副使)에 추증(追贈)되시다.

      어지러운 세상을 유훈(遺訓)대로 조용히 한평생을 보내며 배위(配位) 증금성군부인 나주정씨(贈錦城郡夫人 羅州鄭氏)

    사이에 삼남(三男)을 두시어 유교를 지키며 거업(擧業)은 아니하고 장자 창부(昌富)는 무관으로 대장군(大將軍)에 이르고

    차자 창귀(昌貴)는 음사(蔭仕) 판도정랑(版圖正郞)외직 판관(判官)에 이르고 아드님의 귀(貴)로 문하시중 진원부원군(門下

    侍中晋原府院君)에 추증되시다.

      삼자 창수(昌壽)역시 음사 삼사좌윤(三司左尹)에 이르다.  내급사공의 엄계한 유지(遺志)는 손자대 까지 참고 지켜질제

    내외정세(內外政勢)도 변화가 왔다.

      이상 삼선조(三先祖 박사공, 내급사공, 어사공)께서 난세(難世)를 당하여 지감(智鑑)있는 자중(自重)으로 자손을 보호하고
     
    먼 후 일의 후손의 창성(昌盛)을 천지신명께 공(功)을 드리어 천운(天運)을 입게하신 공덕을 새삼 깨닫고 늦게서야 타령지소

    (妥靈之所)를 마련 위패(位牌)를 봉안함을 용서하시고 이제는 이곳에 안식하시옵소서 영령(英靈)이시여 수 많은 후손들은
     
    엎드려 원하고 축원합니다.

                     -- 박사공파 상세선조(上世先祖)의 업적회고록 - 삼선조 위패를 봉안, 옛일을 회상 감사하다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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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조는사람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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